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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성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 떠오르나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누각일까요, 질서 있게 이어지는 성벽일까요, 아니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 듯한 견고한 방어 체계일까요? 일본의 성곽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천년에 걸친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는 상징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성곽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세 요소인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를 자세히 살펴보고,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는 이 구조물들이 일본 전국시대와 에도시대의 권력, 군사적 지혜와 미학을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세 요소가 각각 어떤 기능을 했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이시가키와 야구라, 천수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일본 성곽만의 독특한 모습을 만들어 냈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성곽의 영혼: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
일본의 성 문화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특징과 기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요소가 바로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입니다. 이 세 요소는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 봉건 영주의 권력과 군사력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이었으며,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일본 성의 변화: 단순한 방어 시설에서 웅장한 천수까지
일본 성곽의 역사는 야요이시대의 환호취락과 고분시대의 석축 기술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스카시대부터 나라시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규슈와 세토나이카이 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산성이 축조되기 시작했고,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드는 기술도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로 이시가키를 사용하고 여러 층의 구조를 갖춘 성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전국시대에 조총이 일본에 전해진 이후였습니다.
조총이 등장하기 전 일본의 성은 주로 토루와 해자를 중심으로 방어 체계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무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 견고한 방어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축성한 고마키야마성과 미요시 나가요시가 거점으로 삼았던 이모리성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시가키를 도입한 사례입니다. 아즈치성 이후에는 이시가키가 축성의 기본 요소로 자리 잡았고, 관련 기술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는 성의 규모가 더욱 커졌으며, 에도시대 초기에 일본 성곽 건축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천수는 성곽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최종 방어 거점으로 여겨졌고, 이후 일본 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기반: 일본 성곽의 방어 토대와 곡선미
이시가키는 일본 성곽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방어 시설입니다. 상부의 건축물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뿐 아니라, 독특한 곡선과 정교한 석축 기술을 통해 그 자체로도 높은 감상 가치를 지닌 예술적 구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시가키는 왜 권력의 상징이 되었을까?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의 과시 논리
일본 성곽의 이시가키에는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전통 기술과 미학이 담겨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지진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우아하게 휘어 올라가는 반곡선 형태를 보이는 경우도 많아 시각적으로 안정감과 우아함을 동시에 줍니다. 오다 노부나가 시대에는 대규모 이시가키를 사용한 축성이 영주의 권력을 상징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축성 사업은 이를 더욱 대규모화했고, 이시가키는 실용적인 방어 시설을 넘어 다이묘의 재력과 동원력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견고한 이시가키 위에는 야구라를 세우고 조총병을 배치할 수 있었으며, 비가 오는 날에도 효과적으로 방어와 반격을 이어 갈 수 있어 방어 효율을 크게 높였습니다.
이시가키의 축성 지혜: 다양한 공법과 내진 기술
이시가키는 단순히 돌을 쌓아 올린 구조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높은 수준의 토목 기술이 담겨 있습니다. 대표적인 공법은 돌을 얼마나 가공했는지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 노즈라즈미(野面積み/Nozura-zumi): 가장 초기의 공법으로, 거의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쌓는 방식입니다. 거칠고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특징입니다.
- 우치코미하기(打込接ぎ/Uchikomi-hagi): 돌의 모서리 부분을 대략적으로 다듬어 돌 사이의 틈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인 방식입니다.
- 기리코미하기(切込接ぎ/Kirikomi-hagi): 가장 정교한 공법으로, 돌을 규칙적인 형태로 잘라 서로 빈틈없이 맞물리게 합니다. 높은 수준의 석공 기술을 보여 줍니다.
돌의 가공 방식뿐 아니라, 이시가키를 쌓는 배열 방식에도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 누노즈미(布積み/Nuno-zumi): 가공한 돌을 가로 방향으로 가지런히 배열해 수평선이 이어지도록 쌓는 방식입니다.
- 란즈미(乱積み/Ran-zumi): 크기가 서로 다른 돌을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입니다. 수평선은 일정하게 이어지지 않지만, 압력을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산기즈미(算木積み/San-gi-zumi): 이시가키의 모서리 부분에 직사각형 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을 번갈아 쌓는 방식입니다. 모서리의 구조적 강도를 효과적으로 높이며, 일본 이시가키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힙니다.
많은 이시가키에는 가라즈미(空積み/Kara-zumi) 공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돌 자체의 무게와 정교한 배열만으로 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돌 사이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진동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어, 일본 옛사람들의 뛰어난 내진 기술을 보여 줍니다. 이시가키 내부에는 우라고메이시(裏込石/Uragome-ishi)와 배수 구조도 설치되어 있어 장기간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물을 원활하게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덴카부신(天下普請), 즉 전국의 다이묘가 공동으로 참여한 축성 사업에서는 운반된 돌에 가문 문양이나 기호를 새겨 담당 다이묘를 표시하기도 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또 하나의 역사적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시가키에 남은 표시: 가문 문양, 덴카부신과 정치 판도
이시가키 공법의 변화는 시대별 기술 발전과 문화적 특징을 보여 줍니다. 초기의 노즈라즈미에서 후기의 기리코미하기로 발전하면서 돌을 가공하는 수준도 점점 정교해졌습니다. 이는 기술의 발전을 뜻할 뿐 아니라, 다이묘의 재력이 커지고 권위를 과시하려는 요구가 강해진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즈치성 이후의 근세 성곽에서는 이시가키가 더욱 웅장해지고 공법도 세밀해져 성주의 지위를 상징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여러 이시가키에 남아 있는 가문 문양을 통해 당시의 정치 구도와 다이묘 사이의 협력 관계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감시와 공격의 요새: 다기능 건축물 야구라
견고한 이시가키 위에서 야구라(櫓/やぐら)는 여러 기능을 담당하며 성곽 방어 체계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했습니다. 감시와 공격의 거점일 뿐 아니라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 기능도 갖추고 있어, 일본 축성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구라의 변화: 간단한 감시대에서 견고한 탑까지
야구라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그 원형은 조몬시대와 야요이시대의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헤이안시대의 두루마리 그림에서는 공성전 때 사용되는 임시 감시대나 방어 시설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櫓」를 「矢倉」 또는 「矢蔵」라고 쓰기도 했으며, 화살을 보관하는 창고나 궁수가 화살을 쏘는 높은 시설을 뜻했습니다.
전국시대 후반부터 에도시대에 이르러 성곽 건축이 점점 복잡하고 정교해지면서, 야구라도 간단한 목조 구조에서 영구적인 건축물로 발전했습니다. 주춧돌 위에 세워졌으며, 두꺼운 흙벽으로 화재와 총탄을 막고 기와지붕을 올렸습니다. 특히 조총의 보급으로 인해 야구라는 더 강한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지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즈치모모야마시대에는 도요토미 계열 다이묘가 축성한 성을 중심으로 높은 이시가키와 기와지붕 야구라가 많이 등장했고, 장식성도 점차 강화되어 영주의 권위를 보여 주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는 특히 서일본 지역의 성에서 다양한 형태의 야구라가 널리 건설되었습니다.
야구라의 기능 해설: 다양한 역할로 완성된 성곽 방어망
야구라는 성곽 안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 모노미(物見/감시): 높은 곳에서 적군의 움직임과 주변 지역을 살펴 조기에 위험을 알렸습니다.
- 방어·공격: 이시가키나 토루 위에 설치되어 적의 공격을 막는 화력 거점이 되었습니다. 일반 창문 외에도 야사마(矢狭間)와 뎃포사마(鉄砲狭間) 같은 작은 구멍을 설치해 궁수와 조총병이 성 아래의 적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 창고(보관): 무기, 탄약, 식량과 생활용품 등 중요한 물자를 저장했습니다. 전쟁이 줄어든 에도시대에는 감시와 방어 기능이 점차 약화되면서 물자 보관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 천수 대용 야구라(天守代用櫓/Tenshu-daiyō-yagura): 천수가 화재나 다른 이유로 소실되었거나, 애초에 천수를 세우지 않은 성에서는 일부 대형 야구라가 사실상 천수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성의 상징이자 지휘 거점으로 기능했으며, 히로사키성의 고산카이야구라는 대표적인 현존 사례입니다.
야구라의 건축미와 다양한 유형
야구라의 구조는 초기의 단순한 목조 건축에서 후기의 견고하고 내구성 높은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기초는 이시가키나 토루 위의 주춧돌에 놓았고, 벽에는 두꺼운 흙을 발라 방어력을 높였으며, 지붕에는 주로 기와를 사용했습니다. 외관은 천수와 마찬가지로 망루형과 층탑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망루형은 하층 지붕 위에 별도의 망루를 올린 구조이며, 층탑형은 각 층의 평면 규모가 비슷한 상태로 위로 층층이 쌓인 구조입니다. 야구라의 규모는 일반적으로 지붕 층수를 뜻하는 「중(重)」과 내부 층수를 뜻하는 「계(階)」로 구분합니다.
야구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형태, 층수, 배치와 용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 히라야구라(平櫓/Hira-yagura): 지붕이 한 겹인 야구라로, 높은 곳에서 감시하기보다는 성벽을 방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 니주야구라(二重櫓/Nijū-yagura): 지붕이 두 겹인 야구라로, 에도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감시와 공격 기능을 함께 갖췄습니다.
- 산주야구라(三重櫓/Sanjū-yagura): 지붕이 세 겹인 야구라로, 외관이 웅장해 작은 천수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 다몬야구라(多聞櫓/Tamon-yagura): 이시가키나 토루를 따라 길게 지은 건물 형태의 야구라입니다. 천수, 다른 야구라 또는 성문을 연결해 연속적인 방어선을 형성했습니다. 야마토 다몬성에서 마쓰나가 히사히데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 스미야구라(隅櫓/Sumi-yagura): 성곽의 모서리에 지은 야구라로, 보통 단층이나 2중 구조이며 성의 중요한 모서리를 방어했습니다.
- 야구라몬(櫓門/Yagura-mon): 성문 위에 야구라를 세운 복합 건축물로, 출입구 기능과 감시·방어 기능을 함께 담당했습니다.
- 와타리야구라(渡櫓/Watari-yagura): 두 야구라 사이, 또는 천수와 야구라 사이를 연결하는 건축물이며 다몬야구라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합니다.
- 쓰케야구라(付櫓/Tsuke-yagura): 천수나 다른 대형 야구라에 붙어 있는 작은 야구라로, 주로 출입구나 보조 방어 시설로 사용되었습니다.
야구라의 명칭도 다양합니다. 방향에서 이름을 따온 다쓰미야구라, 숫자를 사용한 이치반야구라, 용도를 나타내는 다이코야구라, 지명에서 유래한 후시미야구라, 독특한 형태를 반영한 덴빈야구라와 히시야구라 등이 있습니다. 각각의 야구라에는 고유한 역사적 기억과 전술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의 정상: 웅장한 천수의 상징성과 건축적 비밀
천수(天守/てんしゅ)는 일본 성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며,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입니다. 성주의 권력과 군사력을 나타내는 상징일 뿐 아니라, 일본 건축 예술을 대표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천수: 성주 권력의 최고 전당
천수는 흔히 「천수각」이라고도 불리며, 일본 성곽에서 가장 높이 솟은 다층 누각을 뜻합니다. 성주의 권력과 군사적 위엄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건축물로, 일반적으로 성곽의 중심부에 위치해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주변을 감시하거나 지휘하는 데 유리했습니다. 「천수각」이라는 표현은 메이지시대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천수가 성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에도시대에는 천수가 성주의 일상적인 거주 공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었고, 성주는 주로 혼마루나 니노마루의 고텐에서 생활하고 정무를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는 천수가 최종 방어 거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오늘날 천수는 일본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소실된 여러 천수는 전후에 복원 또는 재건되었고,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내부를 박물관으로 활용해 전국시대와 성곽 관련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는 경우도 많아, 현대인들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천수의 구성과 외관: 독립식에서 연립식까지의 변화
천수는 부속 건축물과의 연결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 독립식 천수: 천수가 다른 부속 건물 없이 단독으로 서 있는 형태입니다. 현존하는 히로사키성과 마루오카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복합식 천수: 천수 옆에 작은 쓰케야구라나 다몬야구라가 직접 연결된 형태로, 방어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오카야마성의 천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연결식 천수: 천수와 소천수 또는 다른 야구라를 와타리야구라, 즉 연결 통로 역할을 하는 야구라로 이어 놓은 형태입니다. 마쓰모토성이 대표적이며, 연결복합식 천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연립식 천수: 가장 복잡하고 방어력이 높은 형태로, 대천수, 소천수, 중천수와 여러 야구라를 복수의 와타리야구라로 연결해 거대한 방어 건축군을 형성합니다. 히메지성과 이요마쓰야마성이 대표적인 연립식 천수입니다.
외관에 따라 천수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 망루형 천수: 넓은 하층 지붕, 일반적으로 이리모야즈쿠리 지붕 위에 작은 망루를 올린 형태입니다. 전국시대 후반부터 아즈치모모야마시대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 층탑형 천수: 사찰의 오층탑처럼 각 층의 디자인이 통일되어 있으며, 아래에서 위로 비슷한 평면을 유지한 채 층층이 쌓이는 형태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등장해 에도시대 중후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역사의 증인: 일본의 현존 12천수
일본에서 에도시대 이전에 세워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천수는 단 12곳뿐이며, 이를 「현존 12천수」라고 부릅니다. 이 천수들은 전쟁, 자연재해와 폐성령을 견디고 살아남은 건축물로, 각각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일본의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 가운데 5곳은 일본 국보로, 나머지 7곳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보 5성:
- 히메지성(효고현): 우아한 흰색 외벽과 복잡한 연립식 천수로 유명합니다. 「백로성」이라 불리며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 마쓰모토성(나가노현): 독특한 검은색 외관으로 「가라스성」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연결식 천수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이누야마성(아이치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천수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망루형 천수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 히코네성(시가현): 정교한 외관과 다양한 방어 설계를 갖춘 국보 천수입니다.
- 마쓰에성(시마네현): 검은색 외관과 독특한 망루형 천수가 특징이며, 내부에서 지지 구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일본의 드문 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요문화재 7성:
- 히로사키성(아오모리현)
- 마루오카성(후쿠이현)
- 빗추마쓰야마성(오카야마현)
- 마루가메성(가가와현)
- 이요마쓰야마성(에히메현)
- 우와지마성(에히메현)
- 고치성(고치현)
현존 12천수는 각각 독특한 역사 이야기, 건축 양식과 방어 기술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 성곽 문화를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하는 증거이자 시대를 넘어 남은 건축 예술 작품입니다.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 일본 성곽의 완벽한 협주곡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는 일본 성곽 안에서 서로 따로 존재하는 요소가 아닙니다. 세 요소는 긴밀하게 맞물려 복잡하고 효율적인 방어 체계를 구성했으며, 군사적 기능과 정치적 상징성, 미학을 하나로 결합했습니다.
견고한 이시가키는 성 전체의 기반이 되어 방어력을 크게 높이고, 위에 세워지는 건축물을 안정적으로 지탱했습니다. 야구라는 이시가키의 중요한 지점에 배치되어 감시, 공격과 물자 보관을 담당했으며, 적이 성벽을 오르거나 접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성곽의 중심에 위치한 천수는 이시가키와 야구라의 보호를 받으며 권력의 상징이자 최종 방어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천수에 붙어 있는 쓰케야구라와 여러 야구라 또는 성문을 연결하는 쓰즈키야구라는 이 구조물들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각각의 건축물은 독립된 시설이 아니라, 함께 작동하며 완성된 성곽 방어 체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전국시대의 혼란에서 에도시대의 평화로 이어지는 동안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의 축성 기술과 설계 개념은 계속 변화했고, 결국 일본만의 독특한 성곽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다음에 성을 둘러볼 때는 이시가키부터 보고, 야구라를 살핀 뒤 천수를 올려다보자
일본의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는 놀라운 건축 구조물일 뿐 아니라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입니다. 초기의 단순한 방어 시설에서 시작해 전쟁과 평화의 시대를 거치며, 견고한 방어력과 정교한 기술, 웅장한 외관을 함께 갖춘 성곽으로 발전했습니다.
고성을 방문해 오래된 이시가키를 가까이에서 보고, 높이 솟은 천수를 바라보며, 야구라에서 성을 지키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일본 무사 시대의 열정과 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귀중한 문화유산은 일본 역사를 이해하는 창구인 동시에, 건축미와 인문적 가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다음에 일본 성곽을 방문한다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며 이시가키의 견고함, 야구라의 치밀한 구조, 천수의 웅장함을 살펴보세요.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이시가키·야구라·천수 한 번에 정리
Q1. 이시가키, 야구라, 천수는 각각 무엇인가요?
A. 이시가키는 성곽의 돌로 만든 기초와 성벽으로, 건축물을 지지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야구라는 성곽의 중요한 지점에 설치된 탑으로 감시, 사격과 물자 보관에 사용되었습니다. 천수는 성곽에서 가장 높고 상징적인 건축물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최종 방어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Q2. 이시가키는 왜 아름다운 곡선 형태를 하고 있나요?
A. 이시가키에는 반곡선 형태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외관을 만들 뿐 아니라 구조와 방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으며, 석재 배열, 배수 구조와 우라고메이시를 함께 사용해 전체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높였습니다.
Q3. 노즈라즈미, 우치코미하기, 기리코미하기는 무엇이 다른가요?
A. 돌을 얼마나 가공했는지와 돌 사이의 밀착 정도가 다릅니다. 노즈라즈미는 자연석을 사용해 틈이 크고, 우치코미하기는 모서리를 대략 다듬어 틈을 줄인 방식입니다. 기리코미하기는 돌을 가장 정밀하게 가공해 서로 촘촘하게 맞물리도록 쌓는 공법입니다.
Q4. 야구라는 방어 용도로만 사용되었나요?
A. 아닙니다. 야구라는 무기, 식량과 같은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천수가 없거나 천수가 기능을 잃은 성에서는 일부 대형 야구라가 상징과 지휘 거점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천수 대용 야구라라고 합니다.
Q5. 천수는 왜 성주의 주요 거주 공간이 아니었나요?
A. 대부분의 시기에 성주의 일상생활과 정무는 혼마루나 니노마루의 고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천수는 주거 공간보다는 권력의 상징, 전시 거점과 감시·지휘 시설로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Q6. 현존 12천수란 무엇이며, 국보로 지정된 성은 어디인가요?
A. 현존 12천수는 에도시대 이전에 세워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12곳의 천수를 뜻합니다. 이 가운데 국보 5성은 히메지성, 마쓰모토성, 이누야마성, 히코네성, 마쓰에성이며, 나머지 7곳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